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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부 괘가 전하는 불통(不通)의 경고
주역(周易) 제12괘인 천지부(天地否)는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다. 상괘(上卦)는 건(乾)으로 하늘을, 하괘(下卦)는 곤(坤)으로 땅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두 기운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막혀 있으니, 천지의 도가 단절되고 만물이 순조롭게 자라지 못하는 형상이다. 이 괘는 인간 신체의 균형과 건강 측면에서 보면, 기혈(氣血)의 흐름이 막힌 상태, 즉 부통(否通)을 의미한다. 경락이 원활히 소통되지 못하면 장부 간의 기능이 단절되고, 오장육부가 각각 고립되어 조화로운 생리작용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만성질환의 근본 원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부괘는 단순히 불길한 괘가 아니라, 몸속의 ‘불통’을 깨닫고 다시 ‘통함(通)’으로 회복해야 함을 일깨우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1. 기혈단절과 장부불통의 병리
부괘의 상징적 구조를 인체에 대응시켜 보면, 위로는 건(乾)이 있어 하늘 즉 머리나 상체의 양기(陽氣)를 나타내고, 아래로는 곤(坤)이 있어 하체나 지기의 음기(陰氣)를 상징한다. 그러나 양은 위로만 치솟고, 음은 아래로만 가라앉아 서로 만나지 못하므로 상하불통(上下不通)의 병리가 형성된다. 이러한 기혈단절은 주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2. 경락 막힘과 순환장애
기혈이 원활히 흐르지 못하면 경락의 특정 부위가 막히고, 통증·저림·냉감 등의 증상이 발생한다. 이는 근육과 관절의 기능 저하뿐 아니라, 장부의 기운까지 손상시킨다. 주역적으로 보면 이는 “소인은 길하고 군자는 흉하다(否之匪人 不利君子貞)”의 뜻과 같아, 바른 기운이 위축되고 탁한 기운이 득세한 상태라 할 수 있다.
3. 장부불통으로 인한 기능저하
간·비·신·심·폐의 오장육부는 서로 기혈을 주고받으며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어느 한 부위가 막히면 연쇄적으로 기능저하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비위(脾胃)가 막히면 영양 흡수가 떨어지고, 간기(肝氣)가 울체되면 감정과 순환이 정체되며, 신(腎)의 수기가 올라오지 못하면 허리와 하체의 냉증이 생긴다. 결국 몸 전체가 통하지 않는 ‘내부의 비괘’가 된다.
4. 정기(正氣)의 손상과 만성질환화
기혈순환의 장애가 지속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피로가 누적된다. 이때 외부의 사기(邪氣)가 쉽게 침입하며, 그 결과 만성피로, 두통, 소화불량, 냉증, 불면, 우울 등 다양한 만성질환으로 발전한다. 이때 부괘는 “대인불화(大人不和)”라 경고한다. 즉, 인체 내부의 대인(大人), 곧 정기(正氣)가 조화를 잃은 것이다.
괘상주역 임상사례
50대의 베트남 여성 환자는 수년간 지속된 소화불량, 수족냉증, 무기력으로 내원했다. 그녀는 병원을 전전했으나 뚜렷한 이상을 찾지 못하였다. 맥산체질로는 태음인부체질에 소음인주체질이었다. 맥진으로는 비허(脾虛)와 기체(氣滯)가 동반되어 있었다. 괘상주역 진단에서는 천지비괘가 나왔다. 이 괘의 의미는 상괘의 폐기와 하괘의 위장, 삼초의 기가 분리되어 작용을 하지 못하는 상징이 있다. 이 괘상으로 보면 치료의 방향은 억지로 기운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막힌 곳을 뚫어 소통을 회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처방은 맥산침법으로 간정격과 삼초정격을 하며 대장승격을 하여 비위와 폐를 보했다. 비위를 따뜻하게 하며 기를 통하게 하는 방향이다. 체침으로는 족삼리(足三里)·중완(中脘)·태충(太衝) 등을 가미하였다. 2개월 후 환자는 손발이 따뜻해지고 소화가 개선되었으며, 정서적 안정감이 회복되었다. 이는 천지부의 “소인이 물러가고 군자가 돌아온다(否終則通)”는 구절처럼, 막힘이 풀리면 다시 통함으로 돌아간다는 원리를 보여주는 임상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단 천지부괘의 상징과 해석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고 처방 역시 그에 따른 변수가 있다.
부괘의 교훈은 막힘을 통하게 하라
천지부 괘는 세상사뿐 아니라 인체의 질병원리를 통찰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불통(不通)은 곧 병이고, 통(通)은 곧 생명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교감해야 만물이 자라듯, 인체의 상하·내외·좌우도 기혈이 순환해야 건강이 유지된다. 오늘날의 만성질환 중 상당수는 이 ‘부괘의 상태’,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기혈단절의 병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진정한 치유란 증상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막힌 기운을 뚫고 몸과 마음이 다시 소통하도록 돕는 일이다. 부괘가 경고하는 “불통의 병”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 우리는 이미 통함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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