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갈등으로서의 면역 이상인체는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생명활동을 유지한다. 세포와 조직, 장기와 면역계가 서로를 인식하고 조화롭게 협력할 때, 우리는 건강이라 부르는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균형이 깨지는 순간, 내부에서는 마치 자신을 향한 ‘소송(訟)’이 일어나는 듯한 충돌이 발생한다. 주역(周易) 64괘 중 천수송(天水訟)은 하늘(乾)과 물(坎)이 서로 엇갈려 마주치는 괘로, ‘하늘은 위로 오르고, 물은 아래로 흐르나 그 방향이 합하지 못하는’ 상을 의미한다. 곧, 서로의 뜻이 어긋나 다툼이 생기는 형국이다. 송(訟)은 단순한 재판이나 싸움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던 존재가 내적으로 분열되어 갈등을 빚는 상태를 비유한다. 이 관점에서 자가면역질환을 바라보면 그 의미가 뚜렷해진다. ..
기다림 속의 순환과 수천수의 철학인체는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흐르는 존재이다. 혈액, 림프, 체액은 정지하지 않고 순환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 순환이 어딘가에서 막히거나 흐름이 느려질 때, 몸은 무겁고 탁해지며 그 대표적인 신호가 바로 수분정체(水分停滯)와 부종(浮腫)이다. 부종은 단순한 미용상의 문제가 아니라, 신장(腎)의 여과 기능 및 수분대사 전반의 불균형을 시사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물이 고였다”로 설명하지 않는다. 물(水)은 곧 기(氣)의 흐름과 연관되며 기운이 막히면 물 또한 정체되어 몸의 균형이 깨진다고 본다.『주역(周易)』의 수천수(需) 괘는 이러한 인간의 생리적 순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需’는 ‘기다릴 수’ 자로, 적절한 때를 기다리며 물이 하늘 아래 ..
‘몽(蒙)’에서 배우는 아이의 성장 이야기성장은 단순히 키가 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발달이 균형을 이루어야 비로소 ‘성장’이라 할 수 있죠. 그러나 요즘 소아과를 찾는 부모들의 고민 중 가장 흔한 것이 바로 성장부진과 발달지연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성장의 문제를 단순히 영양이나 호르몬의 부족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주역(周易)』의 산수몽(山水蒙) 괘는 “아이의 미성숙함 속에 숨은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즉, ‘몽(蒙)’이란 무지(無知)와 미숙(未熟)의 상태이지만,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을 품은 괘입니다. 오늘은 이 산수몽 괘의 철학을 바탕으로, 소아 성장장애(성장부진·발달장애) 치료에 적용되는 한의학적 접근법과 실제 임상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성장부진..
병의 ‘싹’을 읽는다는 것한의학의 임상은 ‘이미 드러난 병’을 다스리는 일인 동시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병’을 읽어내는 기술이다. 특히 병의 초발기(初發期), 즉 증상이 모호하고 일정하지 않은 시기에 병의 방향성을 읽어내는 것은 숙련된 임상의의 안목을 필요로 한다. 이때 《주역(周易)》의 수뢰둔괘(水雷屯卦)는 질병의 생성과 초기 전개를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둔(屯)은 ‘시작은 있으나 아직 형체를 갖추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하늘의 뜻이 막 움트지만 완전히 열리지 못하고, 물과 번개가 서로 부딪히며 탁류 속에서 생명이 싹트는 형상이다. 이처럼 둔괘는 병이 막 발현되려는 시점, 즉 초기증상이 불분명하고 예후가 유동적인 국면을 진단하는 데 탁월한 상징적 틀을 제공한다.1. 초..
곤괘의 지혜로 본 회복의 방향곤괘의 핵심 덕목은 ‘순응(順)’과 ‘유순(柔)’이다. 억지로 힘을 쓰기보다는,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고 스스로를 보전하는 것이 곤의 도(道)이다. 음혈허의 치료 역시 이 원리에 근거한다. 즉, ‘보혈(補血)’과 ‘양음(養陰)’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영양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다시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곤괘의 철학을 일상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생활 지침이 된다. 휴식은 능동적 행위이다. 곤의 에너지는 ‘쉼’ 속에서 자라난다. 충분한 수면, 일정한 루틴, 과도한 자극의 회피가 회복의 첫걸음이다. 1. 음기부족곤(坤) 괘는. 주역(周易)에서 곤괘(坤卦)는 ‘지지(地之卦)’로, 하늘의 건괘(乾卦)에 대응하는 음(陰)..
하늘의 기운, 인간의 생명력을 일으키다주역(周易)》의 첫 번째 괘인 건(乾)은 하늘의 움직임을 상징한다. 하늘은 쉼 없이 스스로를 운행하며, 그 속에는 무한한 생명의 원동력이 깃들어 있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이 하늘의 기운, 곧 양기(陽氣)를 만물의 근원으로 보았다. 현대인의 몸 또한 이 양기의 순환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스트레스, 과로,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양기의 뿌리가 흔들릴 때, 우리는 쉽게 피로하고, 기초체력이 떨어지며, 회복이 더디다. 건괘의 상징을 통해 잃어버린 양기를 회복하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명력(先天之氣)을 되살리는 법을 살펴보자.1. 건괘(乾卦)의 의미 — 양기의 순수한 근원건괘(☰)은 하늘, 강건함, 창조, 순양(純陽)을 상징한다. 여섯 개의 효가 모두 양효(—)로 구성되어 있..